연말로 갈수록 고공 행진을 이어가던 원·달러 환율이 정부의 짧은 메시지 하나에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 외환당국이 “원화 가치의 과도한 하락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내놓자, 시장은 즉각 반응하며 환율이 단숨에 1450원대까지 밀려났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코멘트’ 수준을 넘어선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동안 외환시장에 대한 정부의 발언은 주로 우려 표명이나 원론적 입장에 머물렀지만, 이번에는 정책 실행 의지와 대응 수단을 동시에 암시했다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실제로 환율은 개장 직후 상승 출발했지만, 당국 메시지가 전해진 뒤 장중 큰 폭으로 하락했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반응을 두고 “구두 개입의 강도가 한 단계 올라갔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정부가 최근 수주간 관계 부처와 유관 기관을 아우르는 협의 구조를 가동해왔다는 점을 강조한 부분이 투자자들의 심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말 그대로 ‘경고성 신호’가 아닌,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배경에는 누적된 환율 상승 압박이 있다. 불과 반년 전만 해도 1300원대에 머물던 환율은 하반기 들어 가파르게 올라 1480원선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치솟았다. 글로벌 달러 강세라는 외부 요인에 더해,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투자 확대가 원화 약세를 부추겼다는 인식도 정부 판단에 깔려 있다.
이 때문에 외환당국은 환율 안정의 해법을 금융시장 내부에서도 찾고 있다. 해외로 빠져나간 자금을 다시 국내 시장으로 유도하기 위해, 국내 주식 투자에 대한 세제 완화 카드까지 함께 꺼내 들었다. 환율 문제를 외환시장만의 이슈가 아니라 자본 흐름 전체의 문제로 보고 대응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가 ‘방향 전환의 신호탄’인지, 아니면 단기적인 속도 조절에 그칠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는 시각도 공존한다. 말의 효과는 즉각적이었지만, 실제 환율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는 금리, 글로벌 금융 환경, 자본 이동 등 보다 구조적인 변수들이 함께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구두 개입은 정부가 환율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 사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외환시장은 이제 다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말 다음에 무엇이 나올 것인가.”